본문은 다윗의 또 다른 실수을 알려 줍니다. 일찌기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가 임신하였다고 하자 알리바이를 만들고 그것이 실수로 돌아가자 요압을 시켜서 우리아를 죽게 합니다. 본문에서도 요압이 나옵니다. 느닷없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합니다. 요압으로서는 왕이 인구조사를 한다고 할 때 믿음의 말씀으로 제지를 했지만 사탄의 유혹에 빠진 다윗은 요압의 조언을 무시합니다. 인구조사란 요압이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볍게 여기고, 사람의 의지를 강화하는 한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조세를 더 받아드리고 병역을 크게 하기 위한 지극히 인간적인 일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빠진 다윗은 결국 하나님께 벌을 받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하나님을 끝까지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요압이라는 사람에게 주목하고 싶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조카였고, 다윗이 나를 안정시킬 때 큰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청을 받아서 우리아를 청부살인한 장본이이고, 압살롬이 자기의 여동생 다말을 욕보인 이복 형 암논을 죽인 일에도 관여를 합니다. 물론 자기의 친 동생 아사헬을 죽인 아브넬에게 복수를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죽으면서 그 일을 언급하면서 새로이 왕이 된 솔로몬에게 요압을 처형할 것을 부탁하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다윗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고, 다윗과 매우 밀착되어 있어서 솔로몬의 치정에 많은 장애가 될 것을 예상해서 매우 작은 사건으로 그를 처형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다윗 주위에 그림자처럼 요압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왕이나 보스의 참모가 된다하여도 결코 악에는 동참하거나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가르침입니다. 물론 보스에게도 자기의 도덕성을 의심받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나아가서 지나친 충성도 금물입니다. 두번째로, 보스의 공의를 지켜주지 못할 바에는 보스를 떠나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요압은 권력으로 인하여 살다가 권력에 희생이 되는 인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압도 다윗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귀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다윗을 위한 인물이었어도 다윗과 함께 공의로 주님 앞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요압을 비롯하여 어떤 사람도 자기가 행한 것에 대한 심판을 받습니다. 주님이 섬기라는 사람이 불의해서 불의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은 변명이 됩니다. 보스나 왕이 불의를 가까이 하는 사람일 때는 그냥 조용히 떠나는 것이 오히려 주님 앞에서 바른 삶이 아닐까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귀한 사람을 만나게도 하시지만 그의 행동에 대하여 심판하심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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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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