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문과 가정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가정이 가문이고, 가문이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가문 안에 있는 가정에 금이가고, 가정이 모여서 가문이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떠난 개인 생각할 수 없고 개인을 상실한 공동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그렇지 않죠? 모든 것에 개인입니다. 개인이 잘 되면 공동체가 잘 된다구요? 몸 속의 피가 혈관을 통해서 잘 흘러야 하듯이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가 그렇게 유기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의 공동체와 개인은 억지로 맞추면 연결이 되지만 정작 소통이 안 됩니다. 가문을 떠난 가정을 추구하면 그렇게 되고, 공동체를 떠난 개인을 세우면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요인이 이방여인과의 혼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여인과의 혼인을 엄격히 금하셨습니다. 물론 이방 여인들 중에는 다말도 나오고, 룻도 나옵니다. 그리고 여리고의 기생 라합도 나옵니다. 독특한 몇 몇 분들을 향해서는 믿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믿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물질을 먼저 생각하고, 공동체 없는 가정과 개인을 주장하며 나아가서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라면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10절에서는 먼저 이방 여인들로 인하여 공동체 내의 가정과 개인 사이에 금이가고 파괴가 되어 서로 간에 배신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10절 후반 부에서는 그런 일에서 진일보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서까지 믿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주님을 배신하여서 성소를 더럽히고, 이방 우상을 섬기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성과 가정이라는 과정을 통해 우상을 섬기는 일까지 진척된다는 지적입니다. 왜 이방인과 혼인하지 말아야 합니까? 이방인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성과 가정을 이용하여 우상을 섬기게 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공동체를 파괴하고 나아가서 가정을 파괴하고 개인을 피폐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공식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개인을 안장되고 건강하게 하십니다. 가문 안에 있는 가정을 통해 가문과 가정과 개인이 소통을 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심으로써 개인을 평화롭게 하시는데 우상은 개인을 위한답시고 가문에서 가정을 떼어내고, 가정에서 개인을 구분하지만 결국 뿌리없는 개인, 외롭고 소외받는 개인이 되게 합니다. 결국 외로움과 병과 죽음으로 이끕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없는 개인은 그렇게 뿌리를 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차별하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돌보아 주라고 하십니다. 어떤 이방인을 버리라는 말씀이십니까?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이방인, 가문과 가족을 가르는 이방인을 말합니다. 가문과 가족을 건강하게 하시고, 그 안에서 개인을 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지키게 하는 것이 성소이고 예배이며 성소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가문과 가정, 나아가서 개인을 떼어서 생각하거나 떼어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유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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