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시며 헬라 문자를 사용하셔서 본인을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알리셨는데 오늘의 본문 17절 말씀에서는 그 말씀을 풀어서 ‘에고 프로토스 에이미 에스카토스’나는 처음이고,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과 마지막이신 주님께서 요한에게 오셨습니다. 요한이 그 예수님을 만나게 된 배경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 일로 밧모 섬에 갇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를 설명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밧모 섬에 억류되어서 돌을 깨는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노동을 해 본 사람들은 노동 중에서 가장 힘든 노동이 돌을 깨는 일이라고 합니다. 젊어서 광산 노동, 건축 노동과 같이 손으로 노동을 해 본 저로서는 ‘노동이 힘이 들다.’ 그 중에서도 ‘돌 노동은 가장 힘이 들다.’는 설명이나 환경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요한을 그곳에 가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 중에서도 주님께서 말씀을 들려 주시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요한에게 말씀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을 때 요한은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입신을 경험하고, 죽음이 얼마나 아픈진 몰라도 그 정도 이상의 고통이었음을 아는 저는 요한이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을 것이라는 설명도 공감을 합니다. 본문 역시 어제와 같이 많은 말씀을 나눌 수 있지만 지면이 제한되어서 중요한 몇 가지만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이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일곱 별을 쥐고, 일곱 촛대 가운데 서 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설명하시기를 20절 말씀에서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심부름 군이고,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하십니다. 일곱 촛대를 설명하시겠습니다만 촛대라는 말에는 초가 있고, 초의 불이라 하면 꺼질 수도 있다는 말씀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일곱 별을 일곱 교회에 보낸 심부름꾼이라고 하시는데 사역자는 주님께서 보낸 심부름꾼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와 사역자를 주장하심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8절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갖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가 되신다는 그 말씀을 다시 확인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교회를 주관하시는 예수님께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갖고 계신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제 2장의 말씀을 잘 듣는 기회를 가지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교회를 생각하였으면 합니다. 교회의 시작과 끝, 열고 닫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시고 사역자는 예수님의 심부름꾼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십시다. 일찍이 예수님은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보낸 주님을 믿는 것이고, 내가 보낸 사람을 믿는 것은 나와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심부름꾼이 잘못하면 갈아서 바꾸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이라는 말씀이 전제된 말씀이 심부름꾼이라는 표현이십니다. 그러나 바울이 늘 말씀하시듯이 주님께서 보내신 심부름꾼의 말을 잘 듣고 그와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주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바울은 심부름꾼은 주님께 백성들을 매일 보고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시길 원하십니까?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뿌리를 내린 좋은 신자로 심부름꾼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받고 충성을 다하는 복있는 신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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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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