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사람은 아브람의 조카 롯의 이야기이고, 또 한 사람은 롯의 큰 아버지 아브람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람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지나갔고, 아브람의 부탁을 기억하는 천사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비교됩니다. 두 천사께서 조카 롯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롯도 큰 아버지 아브람처럼 그 두분을 대접합니다. 그러나 아브람과 다른 것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브람은 살진 좋은 송아지를 잡아서 요리를 하게 하였고, 치즈를 내놓고, 본인이 직접 대접하는 등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분주하였다면 롯의 경우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구워서 상에 차려 드렸다는 내용이 있을 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동네 사람들이 롯의 말을 귓전으로도 듣지 않고 오히려 잘못을 하는 사람들을 말리는 롯을 조롱하면서 위협을 합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경우는 원로들이 아브람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보내주신 지도자라고(창23:6) 하였습니다. 물론 사라의 장지를 찾는 아브람에게 어느 곳이든 선택하라고도 하였습니다. 롯에겐 사람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일까요? 저는 양자에게서 이유를 찾고 싶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나쁘다. 또 하나는 롯이 그런 곳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롯은 그들에게 인정을 못 받고 있다. 는 것입니다. 자, 동네 사람들과는 그렇다라고 하여도 롯은 자기의 딸과 결혼할 미래의 사위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관계가 다르지만 그래도 아브람의 아들 이삭은 백 살이 넘은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려고 줄로 묶고 모리아 산상의 제단에 올려 놓을 때 그냥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롯의 사윗 감들은 자신들을 살리려고 하는데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하여 참 복이 없는 롯이었습니다. 또 다른 것은 두 딸과 아내를 데리고 소돔을 벗어나는데 아내가 천사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망하는 소돔을 보다가 소금 기둥으로 바뀌게 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아브람의 아내 사래도 남편을 어렵게 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아내였기에 아브람은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바치려고 했을 때 아내를 따돌렸던 것 같습니다. ㅎㅎㅎ 아내를 알았고, 아브람은 그런 아내를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고 일을 진행하였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롯에겐 그런 치밀함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 19절 말씀에서 롯은 두 천사에게 자기를 좋게 보아서 구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일 읽을 29절 말씀에서 천사가 롯을 구해 준 것은 롯 때문이 아니라 아브람을 기억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 천사가 떠난 후 아브람은 여전히 자기와 함께 하는 주님께 여섯 차례에 걸친 중보를 드렸고, 롯을 위하는 아브람의 정성을 들으시고 그를 기억하셔서 롯을 살려 주셨다고 합니다. 롯은 큰 아버지 아브람의 공으로 천사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 다른 사람의 복이 없으면 살기가 어려운 사람을 아브람과 롯에게서 배웁니다. 언제 우리 자신은 아브람처럼 복의 사람으로 살 수있을까요? 네, 주님께서 주시면서 주위의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마음을 갖고 잘 나누어 주면서 살면 아브람처럼 그렇게 복되게 살 수 있을까요? 물론 자기를 믿고 주시는 주님이야말로 최고로 모시고 대접해야 하겠지요. 하나님을 최고로 알고 하나님을 최고로 모시고 주님의 뜻과 계획을 잘 따르는 사람이 복된 사람임을 배우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영향을 미치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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