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크게 두 내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인이 우주와 세상과 말씀을 묵상한 내용이고, 또 하나는 시인이 묵상을 한 후 그것이 주님의 드는 지를 점검하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한 묵상이 주님의 말씀에 드는지 들지 않는 지를 묻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즈음을 포스트 모던 시대라고 합니다. 포스트 모든 시대의 특징은 모든 것을 자기의 주장으로 판단하고, 자기가 기준입니다. 맞다, 틀리다는 정리보다는 일리는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매우 혼란스런 결과가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하게 되는데 21세기가 그렇습니다. 자기가 기준이 되다보니 죄의 기준이 모호하여 지고, 잘 입증하고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에 여러 사람이 동의를 하면 그것이 옳바른 것이 됩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동성애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피터 버거라는 종교 사회학자는 지금의 시대를 향해서 정통이 없어지는 때라고 이미 오래 전에 예고하였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보면 본문 14절에서 자기가 묵상한 것을 주님께 가지고 가서 주님 제가 묵상한 것이 주님의 마음에 드십니까? 라는 질문은 그다지 동의가 가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본인이 깨달은 것, 본인이 결심한 것을 성령께서 주셨다고 오해하고 주장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벗어나서 개인적인 사고를 하면서도 자신의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에서는 주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려고 애쓴 것 그리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려는 시대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런 면에서 본문 14절의 말씀을 읽으면 오늘날 우리가 주님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늘과 자연 그리고 그런 피조물들이 주는 현상들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듣는다고 합니다. 대단한 깨달음이지만 자칫하면 자연 숭배 신앙(토테미즘)으로 빠질 수 있으므로 그 경계를 잘 알고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자연을 통해서 주님의 능력과 지혜를 깨달아야 하지 자연이 나타내는 거대함과 위대함을 숭배하게 되면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그렇다고 시인의 깨달음과 묵상이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자연을 통해서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깨달으며 그 깨달음을 주님의 말씀으로 연결하여 깨닫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본문 이외에서 시119편에서 가장 풍성하고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줍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히4:12절과 13절에서 알려 줍니다.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말씀이 주는 교훈하여 시인을 통해서 알려 주시는 말씀들을 인용하며 함께 읽겠습니다. 주님의 교훈은 완전하여서 사람에게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주님의 증거는 참되어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준다.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주님의 계명은 순수하여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주님의 말씀은 티 없이 맑아서 영원토록 견고히 서 있으며, 주님의 법규는 참되어서 한결같이 바르다. 주님의 교훈은 금보다, 순금보다 더 탐스럽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 달콤하다. 시대가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여도 주님께서 주신 말씀과 계시들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힘을 얻는 영성이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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