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된 예수님, 심문받는 예수님에게 사람들은 물론이고, 제자들 중에서도 "모두 예수님을 도망하도 저만은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 역시 아무 것도 못아였을 뿐 아니라 부인하고 마태복음에 의하면 심지어 저주까지 하였답니다(마26:74). 베드로가 몸은 도망을 가지 않았어도 예수님의 예언처럼 마음이나 정신은 예수님에게서 멀리 있었습니다. 우리라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라고 대답했던 제자이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겠다며 부화내동하여 제자의 무리들이 떠나갑니다. 그런 상황에도 남아있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당신들은 나를 왜 안떠나십니까? 당신들도 떠나세요."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생명의 말씀이 주님께 있는데 우리가 어디로 떠나겠습니까?"(요6:68)라고 예수님을 격려했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변화산에서 달라진 예수님을 보고 천막 셋을 짓겠다고 하였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17:1~5)는 말씀을 들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서 한 번도 아니고 세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그런 아픔이었고, 외로움이었고, 배신당함이셨습니다. 아무도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길이 예수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만약 깨어 기도해 달라는 예수님의 부탁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함께 기도했다면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의 위로가 되어드릴 수 있었을까요? 모르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가셨어도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큰 상처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천사들 앞에서 나도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지만 나를 부인하면 나도 천사들 앞에서 그를 부인할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시인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믿음을 되돌아 볼 때 나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세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실 때 믿음의 선한 일들, 십자가의 길, 예수님을 시인하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해야 함에도 하지 못해서 부끄러웠고 민망했던 일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기도함으로 그런 아픈 상처를 우리 마음에 스스로 만들지 마십시다. 기도가 예방이었고, 기도가 면역이었고, 기도가 능력이었습니다. 기도할 때에 부끄러움도 피할 수 있고, 민망함도 당하지 않게 되지만 기도할 때에 교만하지도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음을 알고 자랑하지 않게 됩니다. 기도함으로 주 안에서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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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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