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으로 머리를 가리고, 신발을 벗어 맨발로 올리브 산을 향하여 걸어갔어도 다윗을 향한 수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족속인 시므이란 사람이 와서 다윗을 저주하며 흙과 돌을 던집니다. 쫓겨가는 다윗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시무이를 저지하고 처치할 수 있습니다. 장군 아비새가 충분히 저를 처지할 수 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왕의 의도를 물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아들도 자식을 배반하여 괴롭히는데 하물며 베냐민 사람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고 대답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징계와 심판이라면 누가 피할 수 있겠고, 징계의 도구가 누구인들 그를 향해 반대를 할 수 있겠냐면서 자신이 겪는 고난을 주님이 주신 것으로 이해하며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다윗이었기 때문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징계하셔도 다윗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심을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 우선 제사장들을 보내주셨고, 친구 후새를 보내주셨고 충분히 다윗을 향해 반역을 할 수 있는 잇대라는 장군도 보내주셨습니다. 징계를 하시지만 함께 하시면서 징계의 의미와 사랑을 깨닫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참고, 고전10:13). 하나님께서 더 큰 것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아히도벨이란 전략가가 있었습니다. 아히도벨의 전략은 백성들은 물론이고, 다윗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이해할 만큼 신용과 지략이 뛰어났습니다(삼하16:23). 그런 사람이었기에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편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다윗이 바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아히도벨의 전략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하여 달라(삼하15:31)고 기도하였습니다. 압살롬은 그 아히도벨에게 전략을 요청하여 듣습니다. 아히도벨은 여전히 궁에 남아있던 다윗 왕의 후궁들과 왕궁 옥상에서 관계를 하여 압살롬이 왕궁의 임자가 되었음을 온 천하에 알리라고 하여 압살롬은 그의 전략대로 실천을 합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은 자기에게 일만 이천명의 군사를 주면 다윗을 당장 쫓아가서 오직 왕만을 죽이고, 군사 모두와 함께 전 이스라엘을 압살롬에게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장담합니다. 충분히 수긍을 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버지의 첩들과 관계까지 가진 압살롬이 이 대목에서는 2nd Opinion을 언급하면서 아버지의 친구 후새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느끼게 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밧새바와 우리아의 가정을 파괴한 다윗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실 때 너는 은밀히 간음하였지만 너의 부끄러움을 만 천하에 알리셔서 부끄럽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로 실천을 하신 후에 충분히 승산이 있는 아히도벨의 전략을 보류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압살롭이 말도 되지 않는 후새를 자기 옆자리에 앉힌 일이며 또한 그를 찾는 것은 압살롬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때를 얻은 후새는 압살롬에게 지연하도록 전략을 제공하고, 한편으로는 다윗에게 빨리 도망을 가도록 연통합니다. 연락을 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들킬 수 있고, 의심을 갈만한 일들이 벌어진 그 중요한 사건임에도 압살롬은 그런 중요한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히도벨은 자살을 하고, 다윗은 시간을 벌어서 압살롬의 공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납니다. 그렇게 벗어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여러 곳에서 다윗을 돕는 사람들을 보내셔서 위로하게 하시고 다윗으로 하여금 정비할 수 있는 여유를 주십니다. 심판과 징계는 하시되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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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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