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통들이 나옵니다.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이 희롱거리로 삼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참 생각이 없는 사람들인지 가벼운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께서 지쳐서 십자가를 더 이상 지고 가시지 못하자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강제로 대신 지고 가게 한 일입니다. 자기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처럼 구차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감당할 힘이 없으셨습니다. 잔인하고 가벼운 로마의 병사들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지 못하는 예수님을 배려해서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알아서 지고 가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지게 때리고 죽도록 때려도 못 지고 가시자 할 수 없어서 시몬에게 맡겼다고 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졸지에 강압에 따라서 사형수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되었는데 로마서 16:13절에 의하면 그가 예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지 못하신 십자가를 대신 졌는데 그에게 뭔가가 있었습니다. 그랬으니 예수의 사람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처음엔 내가 왜 이 힘든 십자가를 대신 져야 해! 내가 왜 사형수의 십자가, 아무런 죄가 없는 내가 왜 반역자의 십자가를 져야 해 투덜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져야 할 십자가를 졌는데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그가 예수의 사람이 되었답니다. 롬16:13에서는 구레네 시몬을 향해서 주님 안에서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세상적인 눈에서는 억울하고 재수없고 힘들어도 그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혹시 예수님의 십자가 지는 것을 싫어하시지는 않습니까? 깊은 곳에서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주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임을 깨달으시길 축복합니다. 주님의 선택과 음성을 들으시고 기쁨으로 십자가 지고 가는 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고통 중에 십자가에 손을 못 박히시는 고통이 있었고, 머리에 가시로 된 면류관이 있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입니다. 머리에 쓰신 가시 면류관은 보통 가시가 아니라 찔리면 매우 큰 아픔을 느끼는 가시라고합니다. 손에 못을 박은 이유는 십자가에 달릴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입니다. 박히는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그 보다 큰 아픔이 십자가에 달린 자기의 몸을 지탱할 때인 것을 생각하면 그 아픔은 상상도 못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아픔을 당할 이유가 없는데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인용하면 우리의 아픔을 낫게 하시기 위하여 대신 아파야 하시는 것이었고, 우리의 악함을 용서받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통은 악인들에게 멸시를 받는 모멸감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받도록 하였습니다. 군중들을 선동하고, 빌라도를 압박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달아매고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는 자야!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자신이나 구원하여 보아라.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자네는 허상과 허언 때문에 죽는 것이야! 알았어?라는 의미가 담긴 나름대로 잠꼬대 같은 설교를 예수님에게 해 대었습니다. 처참한 현실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결과로 속입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 예수님께서 구원하시지 못하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모욕하였습니다. 모두 헛된 것들입니다. 그들은 거짓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좌우 옆에 있던 두 죄인들로부터도 욕을 들었답니다. 네, 예수님을 도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로움, 아픔, 답답함, 억울함을 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당하실 뿐이셨습니다. 그래야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과 인류가 구원되므로 그냥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과 은혜가 있으셨기에 저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주로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깨닫고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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