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기독인들은 주일 예배 시 사도신경을 암송합니다.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한 사람들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율법학자들인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왜 이런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고 주님 그날까지 기독인들의 입에 예수님을 은돈 삼십 냥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도 아니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고통을 주고 십자가에서 죽게한 사람이었을까요?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정치범도 아니고, 사람들을 선동해서 로마는 물론이고 유대를 전복하려 했던 사람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문제로 인하여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알았고, 물론 대제사장들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 예수를 처형하라는 구호도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서 심문을 해 보았지만 예수님은 죽여야 할 인물도 아니었고, 더더욱 십자가에 처형을 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에게서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을 정도였고, 자신을 모욕하고 때리고 거짓 증언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인물이셨음을 알았습니다. 물론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로 처형한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빌라도도 가룟 유다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에게 고통을 주고 십자가에 처형을 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쓰게 한 것에는 그의 책임이 있습니다. 겉으로 들리는 구호나 함성보다는 그는 죄가 없다는 진리의 소리, 그리고 그는 의인입니다. 당신은 그의 죽음에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는 아내의 소리를 무시하고, 겉으로 나타나는 한 순간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 시대, 한 장소의 소리를 듣는 것이 총독의 자리를 유지하는 선택이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그리고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자신이 예수님에게 고통을 주고 십자가에 처형을 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들었어도 그런 행동을 하였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빌라도를 통해서 저도 우리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나의 지금 이 결정과 언행이 주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올바른 것일까 아니면 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대처용일까? 분명 주님의 계획에 순종해서 영혼을 건강하게 하고 평온하게 하는 것어야 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익이나 칭찬보다는 다소 불이익이 오고 어려움이 온다고 하여도 주님의 뜻과 계획을 순종하는 진리를 따르는 큰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을 주님의 시간에 맡기고 자신을 살피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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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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