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본인의 죽음을 두고 예루살렘에게 가서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들에게 붙잡혀서 죽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들에게 심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심문하고 고소하는 그들의 말이 서로 맞질 않습니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주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살기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부귀와 영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주님의 인도하심과 뜻을 더 중요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주장하고 고소하는 것의 터전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부끄러움도 몰랐습니다. 그들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지탄을 받는 예수님으로서는 주님의 뜻을 더 분명히 아셨을 것이고, 그들의 공격이 허구이고, 본인이 죽어야 함을 절절히 아셨을 것입니다. 이것저것 갖다 대어도 서로가 동의하지 못하던 하이애나와 같던 자들이 대제사장이 예수님에게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요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마지막 어떻게 출현하실지를 말씀하시자 그것이 충분히 사형감이라고 뜻과 입을 모았습니다. 그것으로써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형을 당할 단서를 주셨지만 그것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지옥에 떨어질 사람임을 입증하였고, 지옥으로 행하는 길로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라고 알려 주셨는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것을 근거로 그들을 사형으로 몰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렇다 치고, 예수님의 사람이라던 베드로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떠나도 자기 만큼은 예수님 곁에서 지키며 함께 죽고 함께 살겠다던 베드로는 예수님과 자기가 무관하다 하였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고 저주하면 그날 천사들 앞에서 나도 그를 부인할 것이라고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혈안이 되었던 사람들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베드로나 공통점은 얼마 살지 않은 이 세상에서의 삶과 생활을 영원한 하늘나라보다 더 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렇게 살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느 나라를 더 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삽니까? 주님의 나라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중요하게 여기면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주님만을 높이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면서 믿음을 지키는 신실한 주님의 사람이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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