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가 있다면 자기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일 것입니다. 본문 9절에 그 아이를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생각과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는 것이 비참하고 사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인데 살아야 하는 때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자기들을 포로로 데리고 간 바벨론 사람들이 자기들이 고귀하게 생각하던 신앙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그 노래는 믿음의 노래였고, 간증과 신앙이 담긴 새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간증과 새 노래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샬롬이 깨지고, 포로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고 하며 선지자를 보내셔서 말씀을 주시는데도 여전히 현실은 포로이고, 더더욱 신앙과 간증과 새 노래가 째지고 터져서 시궁창에 나뒹구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동안 자신과 다르게 보아왔던 이방인들의 노래개와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의 노래를 불르면서 자신들이 헛되게 살아왔음을 이방인들 앞에서 해야 하는 환경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시궁창에 빠져있다고 하나님께서 없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런 아픔을 견뎌야 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해야하는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때가 있었습니다. 아이만은 이런 환경을 살지 않도록 돌에 던져서 죽게 하는 사람이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딱 한 가지입니다. 죄 때문입니다. 죄가 원수입니다. 참 이상하게도 상황이 좋아지만 죄가 그런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죄를 짓습니다. 그것이 사람인가 봅니다. 주님께서 기회를 만들어서 주시는 말씀이 계명을 지키라 입니다. 그러면 잘 될 것이다. 표현할 수 없고, 죽어도 죽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현실을 만나고 싶지 않다면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여야 합니다. 죄를 피하여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주님의 말씀과 명령과 계명을 지켜서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이 온전한 사람이 되면 용서하고 위로하고 평화를 주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을 믿으십니까? 주님이 살아계십을 믿으십니까? 주님이 전능하시다고 믿습니까? 그러면 주님의 말씀, 명령, 계명을 붙잡고 자신의 머리에 채우고 자신의 전부가 되게 하십시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저주의 현실이 행복의 현실로 바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이고, 믿음입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는 마음과 입술과 생활로 자신을 복되고 하고 가정과 교회와 주위를 복되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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