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를 가꾸다 보니 심지도 않은 잡초가 아주 많고 잘 자랍니다. 원하는 채소를 위하여 영양분도 주고, 물도 주는데 잡초가 모두 빼앗아 먹는 것 같습니다. 저는 호스트 교회의 정원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잔디가 아니고 그냥 풀인데도 그냥 놔두더군요. 분명히 잡초입니다. 잡초도 생명이 있고,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잡초에 대한 말씀 때문일까요? 이따금씩 교회에도 잡초와 같은 교인들이 계실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똑 같이 먹고, 똑 같은 은혜를 경험하는데 결과가 안 좋습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면 교회를 흩어뜨리는데 골몰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를 만듭니다. 부화뇌동을 하는 핵으로 작용을 합니다. 그런 분들도 주님이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마치 가룟 사람 유다처럼 그들이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마지막 때 추수할 때에 잡초는 불에 던져넣겠다고 하십니다. 알곡은 그냥 자기의 일만 하면 됩니다. 그들을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들이 하는 대로 하다보면 본인도 잡초의 부류에 들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잡초 비슷한 역할을 하는 동물로 염소를 듭니다. 그런데 목동들에게는 염소가 두 세마리는 꼭 있어야 한다는 군요. 이유는 염소는 양들과는 달리 나댄답니다. 주인의 허락도 없이 이곳저곳 다니다가 절벽으로 갔다가 떨어져서 죽는답니다. 염소가 돌아오지 않으면 목동은 그곳으로 양떼를 몰고 가지 않는답니다. 양들은 게으르고 진취적이지 않는답니다. 염소는 그런 특징을 갖고 있는 양들을 움직이는 역할을 한답니다. 목회를 하다보니까 끝까지는 가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처음에 열심을 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평가도 박하게 하고, 잘 되면 자기 탓으로 돌리지만 끝까지는 못 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을 통해 교회가 하지 못했던 실천들을 하게 됩니다. 농사를 오래 동안 지은 농부들은 잡초도 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단단한 흙에 뿌리를 내려주어서 알곡이 단단한 흙에 뿌리를 내리는 일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교회에도 잡초가 있지만 우리의 심평에 있는 잡초나 염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잘 감시해야 하고, 내 뜻, 내 감정대로 하면 시험에 넘어지고 유혹에 쓰러지기 쉽습니다. 성령께 자신을 맡기고 주인이신 예수님께 자신의 길을 계속 물으십시다. 그래야 우리 안에 있는 잡초가 바싹 말라서 죽게 되고 그 대신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알곡이 되도록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냥 순종하는 성령 충만한 신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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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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