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유다의 왕으로 아비야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나와 있지 않지만 남 유다의 아비야와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같은 민족인데도 나라가 갈리어 있으면 전쟁을 하게 됨을 봅니다. 전쟁이 시작되어서 남유다의 아비야 왕은 사십 만명을 모았고,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왕은 정예병 필십만명을 데리고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십 만명과 팔십 만명이라는 숫자는 매우 큰 숫자입니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북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현상을 언급하며 도발합니다. 그 중에서 여로보암과 북 이스라엘이 치명적으로 저지른 잘못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들은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내면 누구든지 성직을 맡겼다고 합니다.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지만 여로보암은 베델과 단에 송아지 상을 만들어 놓고 제단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레위지파, 아론의 자손이 아니라 임의로 세웠습니다. 그런 북 이스라엘과는 달리 남 유다는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군인들 앞에서 나팔을 불면서 전쟁을 돕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전쟁은 하나님께 달린 것이므로 군인들에게 이런 정통성이 있는 도발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좋은 전략과 전술을 갖고 남 유다 군을 포위한 후에 공격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남 유다로서는 진퇴양란에 빠졌습니다. 그런 남유다 사람들이 찾은 것은 주님을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남 유다 군 앞에서 북 이스라엘 군을 공격하여 주심으로써 북 이스라엘 군들이 모두 도망을 하고, 주님 덕분에 북 이스라엘의 정예군 오십 만명을 쓰러뜨렸답니다.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남유다군에게 돋보인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보다 두 배나 더 되는 정예화된 병력이 두 배나 많고, 그 병력으로 자기를 둘어싸서 공격하려는 북 이스라엘의 공격 앞에서 비록 진퇴양란의 곤경에 빠졌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고스란히 공격을 받고, 전멸을 하여야 하는 상황인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찾아서 부르짖었습니다. 그것이 병력의 앞에 제사장을 세우고, 제사장들이 부는 뿔나팔 보다 더 현명하고 좋은 전략이었습니다. 주님께 부르짖는 것 그래서 주님께서 자기들을 대신하여 싸우게 하시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전략입니다. 주님께서 자기 편이 되어서 싸우심을 아는 사람은 두려워하지도 않고, 나아가서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겸손할 뿐이고, 담대합니다. 그래서 성서의 기자는 늘 전쟁은 숫자나 병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알려 줍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전술을 크게 의지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찾아 부르짖으며 담대합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대신 싸워주시는 주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전쟁, 싸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싸워서 공격을 받아야 할 때 무엇보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주님을 부르짖는 지혜와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복되고 좋은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0 Comments
Leave a Reply. |
Archives
April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