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십니다. 그러나 공의롭고 정의로우십니다. 사랑이 많으셔도 아닌 것은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모든 것을 주시면서도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먹지않으면서 사람은 자기가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성막과 법궤를 주시면서 다양한 규칙을 주셨습니다. 특히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거룩하고 조심스럽게 대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게 하시기 위하심이셨을 것이라는 추측밖에는 어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 여러 사람이 나오고 그 중에 다윗과 아비나답과 그의 후손 웃사와 아히요, 그리고 오벳에돔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법궤를 이스라엘에 돌려주신 후에 제사장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법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면서 수레에 실어서 옮기는 것을 방관합니다. 블레셋에서 법궤를 옮길 때 수레를 옮기듯이 수레에 법궤에 옮기는 것은 이방인의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고 레위 자손들 중에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옮기게 하셨습니다(민4:15). 그리고 법궤를 옮기는 동안도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법궤의 거룩한 물건에 그들의 몸이 닿으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의 규정이 있었는데 다윗이 수레에 옮기는 것을 묵인 또는 방관하였습니다. 그렇게 옮기다가 송아지가 뛰고 그것으로 법궤가 떨어지려하자 뒤에서 따라가던 웃사가 법궤를 만짐으로 즉사합니다. 이 역시 민4:20절에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순간적으로라도 거룩한 물건들을 보면 죽는다(민4:20)에서 알려 준 말씀입니다. 웃사는 보았을 뿐 아니라 손으로 만졌으므로 죽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이 법궤를 옮기려 했던 계획은 수포로 끝납니다. 법궤를 오벳에돔 집에 잠시 머물게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집을 축복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쁨과 정성으로 법궤를 보관하였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주신 법을 기쁨과 정성으로 지키면서 따라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하나님은 간곳 없고 자기의 뜻과 사람의 인위적으로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허락하지도 않으십니다. 잘 아십시다. 모르고 했더라도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대로 다시 해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희생됨을 알아야 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은혜의 사람은 공의와 질서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주님을 경외하며 사역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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