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과 요나단이 죽고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됩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을 듣고, 다윗은 그들을 애도하며 조가를 불렀습니다. 다윗의 생애와 중요한 결정사항에서 눈에 띄는 현상은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에게는 손대면 안된다였습니다. 다윗의 그런 원칙에 의해서 죽어가는 사울 왕을 죽였다는 젊은 병사를 죽입니다. 혹시 자신에게도 하나님을 중심한 구체적인 원칙이 있으십니까? 어떤 성도님은 자기는 교회당 가까이 산다고 합니다. 그래야 교회에 출입이 쉽고, 언제나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새벽 기도가 자신의 생활에 중심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십일조는 반듯이 한다고 합니다. 나중에 다윗이 자신의 속 마음을 이야기사는데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여 봉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게 손을 대지 않는 것, 사실 다윗이 그렇지 않았다면 사울은 블레셋 병사나 아말렉 사람에게 죽지 않고 다윗의 손에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에 다윗은 사울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건축하여 주님께 봉헌하는 일 모두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주님 중심의 믿음이 있었기에 성전 건축을 거절하시는 하나님의 의견을 다윗은 겸허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자신과 자손들에게 복을 이어가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자기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 신앙에 쓴 뿌리가 뻣어가게 하는 분들도 이따금씩 봅니다. 그런 현상은 본질보다 비 본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잘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프게 여긴 다윗이지만 유다 사람들은 다윗을 왕으로 기름을 부어 세웁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여쭈어서 헤브론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사울의 장군이었던 아브넬은 여전히 살아있었던 사울의 아들 중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서 이스라엘을 다스라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와 이스라엘 간의 군사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 이야기가 2장에 나옵니다. 다윗의 시작은 처음부터 다윗을 반대하였던 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성서 기자는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족속들로 그들의 제어장치를 만드신 것처럼 다윗과 유다에게도 제어장치를 남겨 두셨습니다. 바울은 그런 요소를 자신의 가시라고 불렀습니다. 가시, 제어장치 모두 하나님을 잘 믿고 순종하게 하시기 위한 징게의 도구입니다. 본인에게 있는 징계의 도구는 무엇입니까? 그 도구들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복으로 생각하고 감사하십니까? 아니면 징계로 생각하시면서 불평하십니까? 저도 있습니다.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며 감사하게 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공급하시고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맺게 하십니다(롬8:28). 항상 기도하고 ,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하나님의 중심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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