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말씀에서는 교회의 분파와 분쟁에 대하여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비교를 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에 전혀 이르지 못합니다.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였거나 할 수 있다면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에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들고 하나님을 환영하며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당시에 오히려 예수님을 비웃으며 멸시하였고, 지금도 하나님의 지혜와 구원의 길을 보면서 은근히 멸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우환이나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세계에 대한 미지는 그들을 당황하게 하고 답답하게 합니다. 세상의 지혜가 주는 결과입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의 길을 외면합니다.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자기 자랑에 대한 환상 때문이겠죠? 지혜로운 사람만이 자기 자랑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분열의 원인으로 자기 자랑을 지적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주님의 사람으로, 교회의 지체로 불림을 받았을 때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부르신 이유는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세상에서 강하다는 사람들,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함이었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자기를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셨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통하여 의와 구원함과 구원에 이른 사람들이 자기를 자랑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의 처음은 미련함과 연약함이었으므로 자랑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아들, 십자가에 달리신 지혜의 예수님을 자랑해야 하는데 자기들을 자랑함으로써 네가 못났고 자기가 잘났다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지체라고하면서... 웃지 못할 아타까움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바울은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버리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지혜롭지 못하고 연약했던 사람들이 의와 거룩함과 구원에 이를 수 있었음은 자신들에게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꼭 아십시다. 사람들의 지혜와 능력은 하나님은 물론이고, 사탄에게도 미치지도 견주지도 못합니다. 그런 한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미련한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셨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교회가 분쟁하고 흔들리고 분열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방해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사용되는 것이 자기 자랑입니다. 많은 것이 있는 사람들의 자랑도 사탄에 미치지 못하는데 연약하고 미련한 사람들의 자랑은 말할 것이 못됩니다. 물론 바울이 교인들의 근본을 지적하는 것은 그들에게 자괴감을 주고자 함이 아닙니다. 자신의 근거와 오늘의 은혜를 생각하며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마음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기회만 되면 뒷 담화하고, 다투기를 힘쓰는 자신입니까? 없고 연약하면서 교만한 자신입니다. 그냥 낮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런 자신이 구원받아 거룩하고 의롭게 됨을 감사하면서 겸손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주님께서도 다른 교우들도 그런 자신을 높여 줍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라는 말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는 말씀을 늘 기억하고 그렇게 순종하며 사는 지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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