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침례인가? 세례인가라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죠? 침례나 세례는 예식의 일종일 뿐입니다. 물이 있고, 여건이 마련된다면 침례를 받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침례 탕을 만들어서 구태여 침례를 주장하는 것은 온당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로마 카타콤 시대에서는 침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뿌리는 예식인 세례를 받은 후 새 사람이 됨을 감사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요단강이 있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예수님보다 먼저 오신 요한이 있었으므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에게 침례를 받음은 회개를 위한 침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심은 예수님의 사역이 침례 요한과 이어짐을 의미하였기에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면서 말씀하여 주셨고, 성령이 참가하셨습니다. 이를 가리켜서 예수님의 대관식이라고 하고 시무식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지 본인이 예수님께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요한에게 오히려 침례를 집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였겠지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사람들은 불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의 배경을 물어보셨습니다(마21:24~27). 세례나 침례의 의미는 본문에서처럼 죄를 씻는 의미도 있지만 더 깊게는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면서 자기가 준비하는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합니다. 물로 씻겨지고 성령의 불로 태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태어날 때 가장 기대되는 모습이 무엇이지요? 어떤 분은 육체적으로 살 때 거룩을 방해하던 것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기대하실 수 있고, 어떤 분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덧 입히는 것을 기대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죽으나 사나 주님의 뜻을 순종하며 주님의 영광을 돌려드리는 생을 기대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물로 세례를 받고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났습니다. 주님 닮은 삶,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십시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찾아서 동행하시는 삶으로 매일마다 성령의 열매를 안팎으로 맺으며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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