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는 본문과 어제의 본문에서 주님께서 자기를 치셨으므로 자기는 이제 텅비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쁨이라는 의미의 이름인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괴로움이라는 의미의 마라라고 불러 달라고 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특징이 본문에 있습니다. 첫째, 죄를 지은 자는 주님께 징계를 받아서 괴로움을 당합니다. 두번째는 감사를 잊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그들의 고향과 민족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는데도 두 번째 며느리 룻은 이미 어머니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서 떠나질 않습니다. 어느 누가 그런 행동을 하겠습니까? 남편과 아들들은 잃었다 하여도 자기와 함께 하면서 자기를 돕겠다는 새로운 사람이 있음을 감사하지 않습니다. 나오미는 없는 쪽, 어두운 쪽만을 봅니다. 그런 사람이 되었으므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특징은 좋은 면을 보지 못합니다. 세번째로 주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룻기를 여러 차례 읽고 묵상하면서 룻은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징계를 받아 괴로움에 빠진 나오미를 돕고 궁극적으로 나오미를 구원하는 사사였습니다. 룻기 앞의 성경은 사사기입니다. 그 사사들은 민족과 각 종족들을 구원하는 사사였습니다. 그러나 룻기에서의 사사는 한 개인의 사사입니다. 나오미는 자기를 징계하셨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적으로 판단한 결과 주님께서 보내주신 사사인 룻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봅니다. 고마움도 없고 희망도 없습니다. 입에서는 쓴 소리만을 낼 뿐입니다. 그런 시어머니 나오미에 대하여 룻은 결코 쓰다 달다는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임무는 오직 나오미를 위로하고, 그를 구원하러 보냄을 받은 사사였기 때문입니다. 이따금씩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잊을 때가 있습니다. 봉사하러 보내신 종이고, 구원하러 보내신 사사입니다. 그냥 그 일을 기쁨으로 하면 됩니다. 사실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징계를 받은 사람이므로 사람이 보기에도 문제가 발견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도 그런 사람에게 보내져서 그와 함께 있게 된 것은 그를 돕고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어려움에 빠졌을 때 여전히 살게 하시고, 자기를 돕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고,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는 은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0 Comments
Leave a Reply. |
Archives
May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