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말씀은 다윗도 죄악에 넘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죄악에 빠진 이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윗이 자신의 기본을 하지 않았습니다. 왕들이 출정을 할 때 다윗은 쉬었답니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앞장을 서는 것이 기본인데 다윗은 그 일을 하지 않고 부하들만 보냈습니다. 다윗이 특별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하여도 부하들에게 다윗을 향한 충성도가 떨어질 것임이 분명합니다. 누구도 기본에 성실해야 합니다. 이즈음에서 다윗이 왜 기본에 성실했을까를 생각해 볼까요? 그렇습니다. 좋은 왕궁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전장터에 나가면 죽을 수도 있지만 불편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히람이 지어준 궁궐은 무엇하나 부족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몰락한다는 점도 잊으버린채 기본을 어겼습니다. 두번째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한 몸의 질서를 부서뜨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한 여자가 아니라 여러 여자와 관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남자, 한 여자가 한 몸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가정을 만드신 기본 질서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있는 여자를 간음하다가 들키면 남편이 복수할 때에 아무도 조금도 동정을 해 주지 않는다(잠6:34)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일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차례 하였습니다. 밧세바를 범하는 것 맞아서 죽을 일입니다. 세번째로 다윗은 양심이 무뎌졌고, 어두워졌습니다. 밧세바가 임신을 했다고 하자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불러 들여서 잠을 자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왕과 상관과 전우와 부하들을 생각하면서 아내와 동침하지 않습니다. 그는 술에 취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양심이 살았고, 하나님의 빛아래에 있었다면 그런 온전한 모습을 보고 깨닫고 회개하고 반성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요압을 시켜서 청부 살인을 합니다. 그런 죄악의 결과가 무엇인지도 나단 선지를 통해서 알려 줍니다. 칼부림이 끊이지 않을 거이다. 두번째로 부인들이 밝은 대낮에 수치를 당할 것이다고 합니다. 나단이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본문에서 다윗이 장차 요압의 손에 놀아날 것을 암시합니다. 요압은 다윗 왕의 속을 들여다 봅니다. 평소 다윗 왕은 부하들을 적진지 가까이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아를 보내게 하였고,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우리아를 죽이라는 뜻으로 알아 그를 보내 전사하게 한 후 우리아가 죽었다는 보고를 하였을 때 다윗이 용납한 것을 보고 요압은 다윗의 궤책을 눈치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힘든 전쟁을 한 후에 마지막 승리는 다윗 왕의 공으로 돌리도록 계획을 합니다. 다윗은 요압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깊이 깊이 들어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요압은 다윗의 약점을 파악하여 다윗을 거머쥐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를 보고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하다는 말씀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요압은 기회를 엿보았지만 다윗을 처단하지 못했고, 결국 솔로몬에 의해 처형됩니다. 비록 다윗이 죄악을 범해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은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약속의 관계가 있었기에 다윗은 회개하였고,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다윗을 용서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범한 죄악에 대한 심판과 징계를 철회하심은 아닙니다. 자신이 범한 죄악의 댓가는 받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선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십하라(고전10:12).'는 주님의 말씀을 늘 명심하고 매사에서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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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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