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나사로 형제의 가정으로부터도 오해를 받으셨음을 알려 줍니다. 나사로가 죽을 병이 걸렸다는 전갈을 받으신 예수님은 그가 병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러낼 것이고, 그것으로 예수님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시면서 나사로에게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나사로의 죽을 병을 통해서 병은 죄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이유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죽은 후에 도착하신 예수님에 대한 마르다와 마리아의 반응을 보면 "왜 이제 오셨나요? 주님이 계셨으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텐데요."라는 원망이었습니다. 늦게 오신 자매의 통해서 나사로도 죽어가면서 예수님을 원망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때때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 군중들이나 대제사장들, 심지어는 한쪽에 달린 강도처럼 당신이 구원을 받으면 내가 믿겠다는 식의 반응을 보입니다.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 내가 당신을 주님으로 믿을텐데요. 좀더 믿음을 보인다면 나를 고쳐주셔야 할 때 왜 안계시죠? 지금 계시지 않으면 언제 나에게 도움이 되실까요? 상황이 다급하다보면 그런 마음과 표현을 할 수 있는데 성서는 그런 표현과 마음을 원망이라는 단어로 요약해서 불평, 원망하지 마세요. 라고 경고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황을 모두 잘 알고 계시고, 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하여 주신다고 히2장 18절과 4장 15절에서 설명하여 줍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예수님을 믿고 모실 것에 대하여 거리를 두는 회당장 야이로와 우리들에게도 "그냥 믿기만 하세요."(막5:36)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고쳐주시고, 살려주실 의도와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깊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압니까? 비록 늦게 해결하여 주시고, 때늦게 고쳐주시고 살려 주신다 하여도 예수님만 옆에 계시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안도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감사할 수 있다면 예수님에게 거리를 두거나 예수님을 오해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어느 환경,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깊은 신뢰를 갖는 우리라면 기도의 제목인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뒤늦게 도착하여 오해를 받은 예수님이셨고, 예수님이 가까이 계시지 않음을 불평하고 원망하던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이 지났는데도 예수님은 그를 살려서 무덤 바깥으로 나와서 예수님의 사역을 돕게 하셨습니다(요12:9).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통해서 또 다른 메시지와 적용을 받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불안해 하거나 불평, 원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도와 주심을 믿고 기다립니다. 비록 죽는 것과 같은 큰 일을 맞이해도 주님 때문에 평안하고 조용히 주님께 자신을 맡기십시다. 그곳에 기쁨이 있고, 그곳에 주님을 향한 큰 신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즈음에 기억나는 말씀이 히11:6절이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 4월 주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기대로 주님의 기쁨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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