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누구나가 아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율법 교사가 누가 자신의 이웃이냐고 물은 것에 대한 대답으로 해 주신 말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가 물은 이웃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시고, 누가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가셨을 때 사건을 연결해서 선한 일의 범위가 다름을 확실히 설명하여 주십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가난한 사람이 만났다고 하십시다. 그 사람이 돈이 조금 있는 사마리아 사람처럼 강도 만난 사람을 재정적으로 도울 수 있었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이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었다면 그는 우선 강도 만난 사람을 응급처치하여 주고,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 그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교하신 사람은 돈이 조금 있을 법한 제사장과 래위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들은 응급처치를 해 줄 수도 있었고, 재정적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율법 교사가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났을 때 그의 이웃이 되려면 그도 역시 재정만이 아니라 강도 만난 사람이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야 했을 것입니다. 이웃 중에서도 좋은 이웃, 착한 이웃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이 메시지를 다음의 장면으로 적용하여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로 가셨을 때 그의 누나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서 대화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마리아가 자기를 도울 수 있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도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네, 이웃, 그리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을 자기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으로 고정하거나 규정한 만이 아니라 사람마다 역할과 범위가 다른 것을 예수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착한 이웃은 누구나가 재정적으로 도울 수 있었던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일만을 해야 하는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정성껏 정성껏 돕는 것이 착한 이웃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이웃을 돕고 화목하게 지내는 일에 앞장서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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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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